신용회복경험담

2025.05.08 16:32

두 번의 실패, 한 번의 희망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5.08 16:32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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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15%)

한때 저는 작은 행복이 가득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아내와 아이 둘, 주말엔 함께 공원에 나가 산책하고, 평일엔 자영업 준비에 바쁜 하루를 보냈죠. 퇴직금과 대출을 보태 프랜차이즈 카페를 열며 인생 2막을 시작했습니다.

나름 트렌드를 분석해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골랐고, 가맹점 교육도 열심히 받았죠. 그 무렵, 가정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장시간 매장에 매달리면서 가족과의 거리도 멀어졌고, 결국 3년 전 이혼을 하게 됐습니다. 재산 분할과 위자료로 7,800만 원 정도의 채무가 생겼습니다.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25%)

이혼으로 이미 경제적 여유가 사라졌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카페 운영도 잘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급감했고, 고정 지출은 그대로였죠. 은행 두 곳에서 사업자 대출로 6,000만 원을 추가로 빌렸고, 카드사 두 곳에서 운영비와 생활비로 돌려 막으며 결국 1억 1천만 원에 이르는 빚더미가 쌓였습니다.

대출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카페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혼으로 아이들과는 떨어져 살게 됐고, 명절조차 제대로 얼굴 보지 못한 채 허덕였습니다.

무기력함과 자책 속에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아침에 눈 뜨는 게 두려울 정도였고, 어느 순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희미해졌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20%)

결정적인 계기는 독촉장이었습니다. 법적 조치 예고서에 빨간 글씨로 적힌 문구를 보는 순간, “이대로 가면 정말 끝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죠.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지만,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쉽게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망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 아냐?”라는 선입견도 있었고요.

3개월 넘게 고민했습니다. 주위에는 말도 못 했고, 혼자 끙끙 앓다 결국 용기를 내 상담을 받으러 갔습니다. 문을 열기까지 수십 번을 망설였지만, 막상 상담을 받고 나니 ‘이건 내가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희망이구나’ 싶었습니다.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25%)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 약 5개월이 걸렸습니다. 채무 발생 사유가 정당한지, 소득 대비 변제가 가능한지를 따져가며 꼼꼼히 준비했습니다.

법원에 제출한 변제계획은 매달 29만 원씩 36개월, 총 1,044만 원을 상환하고 나머지 약 1억 7천만 원의 채무는 탕감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서류 준비 과정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채권자 목록, 거래 내역, 이혼 합의서까지 하나하나 제출해야 했죠. 무엇보다 과거를 다시 되새기며 ‘내가 이 지경이 됐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법원에 출석한 날, 판사님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하며 이 제도가 얼마나 절박한 사람들에게 필요한지 체감했습니다. 인가 결정이 났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15%)

지금은 공장 일용직으로 일하며 월 변제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습니다. 많진 않지만, 내 손으로 빚을 갚는다는 것이 제겐 큰 의미입니다.

아이들과는 다시 연락을 시작했고, 작은 선물이라도 보낼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안정되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론 단순히 ‘돈을 버는 삶’보다, ‘지키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다시는 무리한 투자나 감당 못할 소비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요.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개인회생은 ‘포기’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제도입니다. 부끄러워 마세요. 숨기지 마세요. 저도 그렇게 다시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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